일주문_은행의 효능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데 연관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 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한 중생대(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에 번성한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의 예로 널리 알려졌다.

영화 <은행나무침대>가 천년의 세월을 풀어낸 것도 은행나무의 수명이 워낙 오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고목이 많은 것도 같은 까닭으로 볼 수 있다. 다 자란 은행나무의 높이는 10미터에서 15m에 이르나 간혹 40미터에 이르고 지름도 4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인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다.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는 약 1100년으로 높이 41m, 둘레 11m에 이른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도 700살이 된 용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75호)가 있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수령 3~500년의 은행나무는 그리 드물지 않다.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고운사의 말사 광흥사 어귀에도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길 왼쪽으로 치우치게 조성한 일주문 옆을 지나면 길을 막아서는 은행나무의 모습은 놀랍다.

4년 전 가을에 광흥사 이야기를 기사로 쓰면서 이 나무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는데, 결과는 눈으로 보고 즐긴 것과는 견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화사한 은행나무 가로수를 보면서 광흥사 은행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날을 받으려 재기만 하다가 광흥사를 찾은 것은 지난 1일이다. 퇴근길에 들렀는데 오후 5시, 짧은 가을해가 조금 아쉬웠다. 표준 줌과 70밀리 단렌즈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단렌즈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까지 물러섰어도 은행나무는 파인더 안에 다 담기지 않았다.

대충 일흔 장쯤 찍은 사진 가운데 고른 게 아래의 것이다. 물론 보정을 거친 것이다. 내겐 보정에 대한 ‘결벽’ 따위는 없다. 그건 내가 내 촬영행위를 일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찍기를 창작행위로 이해하는 사진가들에게는 보정이 껄끄러운 행위일 수 있겠지만 내겐 전혀 아닌 것이다.

나무의 높이는 16미터, 둘레는 7.5미터다. 사진 속에서 나무는 노랗거나, 다소 푸른 기가 섞인 노란빛이다. 거대한 수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무는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제멋대로 자란 것 같지만, 나무의 모습이 안정적인 것은 순전히 그런 까닭이다.

은행나무 단풍은 시간적으로 좀 늦었다. 잎이 꽤 떨어져 나무 밑이 수북했다. 어저께 광흥사로 단풍 소식을 물었더니 스님은 괜찮다고, 사람들이 은행 열매를 죄다 주워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나무 밑은 깨끗하다. 은행열매 때문에 나는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은행(銀杏)은 ‘은빛의 살구’라는 뜻이다. 은행 열매라고는 하지만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라 열매가 아니라 사실은 씨다. 이 씨가 살구와 비슷하고, 표면에 은빛 나는 흰 가루에 덮여 있어서 ‘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에게만 보내는 은행나무의 '비밀신호'

▲ 은행알. ⓒ 위키백과
은행열매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암나무에 열리는 종자의 겉껍질에서 난다.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고약한 냄새는 다른 동물의 접근을 막는다. 다만 인간만이 은행열매를 먹고 다른 곳에 종자를 퍼뜨린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만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은행열매의 고약한 냄새를 ‘은행나무가 인간에게만 보내는 비밀신호’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 행단(杏壇)이다.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데 우리나라의 향교나 서원에 어김없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자의 은행나무가 뜻하는 것은 ‘인간의 마을’이란 뜻일까.

시나브로 산사에 어둠살이 내리기 시작했다. 은행나무 근처의 길가에 ‘산불예방’ 따위의 문구가 흐르는 전광판 하나가 서 있다. 은행나무가 환기해 주는 400년의 시간 앞에 이 21세기 문명의 표지는 좀 천박하고 왜소해 보였다. 하필이면 그게 거기 서 있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위 문장은 어느 불로그에서 따온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