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만화가 출신 박시백 화백, '만화 조선왕조실록' 20권 完刊]

10년 만에 빚은 대하역사만화 
"집현전 학자가 훈민정음 제작? 실록엔 세종이 만든걸로 기록"
南北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에 "선조들 기록 보존정신 새겨야"

	"90년대 사극 보면서 왕조실록에 푹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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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왕이라고 해도 당대에 실록을 볼 수 없게 차단했습니다. 왕과 신하가 함께했던 회의,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까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정파적인 시각에 따른 해석도 많지만 팩트 자체는 그대로 기록돼 있죠. 또 4개 사고에 실록을 보관해 지금까지 남을 수 있었습니다. 제작·보관 전 과정에 걸쳐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는 위대한 기록물이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엮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전 20권)이 완간됐다. 2003년 7월 첫권 '개국'을 출간한 지 10년 만의 결실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손끝으로 되살린 박시백(49) 화백은 "작업하는 내내 조선왕조실록이 얼마나 위대한 유산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최근 논란이 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해 "기록을 대하는 선조의 태도와 보존 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라며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나 야사가 아니라 정사(正史)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대하 역사 만화 시리즈. 지금까지 70만부가 팔리며 역사 만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박 화백은 조선왕조실록 2077권의 방대한 분량을 121권의 노트로 요약해 4000장, 2만5000컷에 담아냈다. 한 컷씩 한 줄로 세우면 7㎞에 달하는 분량이다.

1990년대 사극을 보면서 조선 역사에 푹 빠졌다는 그는 2001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처음 몇 권은 '만화'를 그리는 것에 중점을 뒀지만, 점차 '역사'를 충실히 담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작업을 하면서 보니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부분이 많았고, 드라마·대중 역사서에서도 실록과 야사가 충돌하는 부분이 많아 실록을 제대로 알리자는 사명감이 커졌다"는 것.

실록과 다르게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대한 내용. 그는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당시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는 집현전을 대표하는 학자였는데 과연 최만리 모르게 훈민정음 팀이 가동될 수 있었을까요. 실록에는 세종이 한글 28자를 지어 어느 날 갑자기 내놓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는 "현대의 학자들이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워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추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펴낸 20권 '망국'에는 동학농민운동부터 조선이 일제 침략으로 패망할 때까지 역사를 담았다. 그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에 집필·편찬돼 내용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료적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제 책이, 조선왕조실록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일보 3013.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