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김정수 교수의 가르침입니다.


위 그림을 참조.
어떤 쓰레기 더미에도 이처럼 더러운 쓰레기가 없습니다.
월인석보 17권 18장에서 조각 조각 오려다가 말도 안 되게 책을 만들고는 신미 대사가 한글을 만드신 증거랍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이는 일을 설마 불가 사람들이 한 것은 아닐 줄로 믿고 싶습니다. 큰 스님이 중국에서 사 오셨다니,
중국 사람들이 조작한 물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진본으로 알고 선전하는 사람들한테 여러 차례 알려 드렸는데도 끊임 없이 되풀이되는군요.
강 상원 박사님의 내용이 아래와 같았는데 틀린 것이군요.

신미대사_한글창제의 주역인가?


 


신미대사 부도탑에서 발견된 친필 범어문서

한글 창제의 주역
한글 창제의 산파역할을 한 신미대사, 그가 주지로 있던 복천암(福泉庵)은 한글 창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도량이다. 복천암사적기(福泉庵事蹟記)에 "세종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信眉大師)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천암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5백미터 가면 신미대사부도탑(보물 제 1416호)이 있다.
세인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는 세종(世宗)의 왕사(王師)였던 신미대사(信眉大師)가 한글 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은 그동안 종종 제기되어 왔었다.

그동안의 정설은 세종대왕이 명령으로 집현전 학자들이 이의 실무 작업을 맡았고, 구체적으로는 우리 입의 발음기관을 본 떴다는 것이었다. 현재 가장 유력시 되는 설은 범자(梵字) 모방설이다.
조선초기 유학자인 성현(成俔)의 저서 용재총화(慵齋叢話)나 이수광(李睡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도 언문은 범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와같이 한글 창제의 주역인 신미대사 친동생인 집현전 학사 김수온이 쓴 복천보강, 효령대군 문집, 조선실록, 영산김씨 족보등 각종 자료를 근거로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산파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이 한글 창제 후 불경을 언해하기 시작한 것도 신미대사의 영향이며 언해할 서책이 많은데 굳이 불경부터 한 이유는 신미대사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세종이 한글 창제의 초석을 다진 고마움의 표시로 복천암에 삼존불을 조성, 시주했으며 죽기 전에 유생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유언으로 신미대사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신미대사의 속가 집안인 영산 김씨 족보에 스님이 집현전 학자로 세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가지 문헌이나 기록으로 보아 한글 창제의 모델이 범어가 분명한데 그 당시 범어를 아는 스님은 신미대사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미대사가 실제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정책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세종이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스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미대사에 대한 세종의 신뢰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