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조선초기 세종이 지은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 활자본. 상 · 중 · 하3권. 현재 상권 1책과 중권의 낙장(落張)이 전할 뿐이다. 보물 제398호.
이 책은 《석보상절(釋譜詳節)》과 함께 합편되어 《월인석보(月印釋譜)》로 간행되었다. 원간본과의 대조에 의하면, 이때 《석보상절》보다는 심하지 않으나 한자(漢字)와 독음의 위치변경, 한자음 종성(終聲)에서의 ‘ᇰ' 사용, 협주(夾註)의 추가, 가사(歌詞)의 수정 등 부분적인 변개와 곡차(曲次)의 변동이 있었다. 이 책이 단독으로 중간된 일은 없다.

《월인석보》에 전하는 <석보상절서>에 의하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이를 본 세종이 《석보상절》의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여 읊은 것이라 한다.
'월인천강'이라는 명칭 자체도 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것으로서, 《월인석보》 권1의 첫머리에 "부텨 百億世界(백억세계)에 化身(화신)야. 敎化(교화)샤미 리 즈믄 글 매비치요미 니라."라고 한 주석에서 보듯이, 곧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세계에 화신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마치 달이 하나이지만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수많은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 말미암은 것이다.

이 책의 간행시기는 《석보상절》이 이루어진 1447년(세종 29)에서 그 다음해인 1448년 사이에 완성하여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이므로 전체로는 모두 580여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상 1책과 권중의 낙장만이 전하여지고 있으나, 《월인석보》에 실린 노래까지 합하면 모두 약 440곡이 알려져 있다. 한글로 표기된 운문(韻文)으로서는 <용비어천가> 다음가는 최고(最高)의 자료로서, 장편서사시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특히, 표기에 있어서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이다. 이 한글 위주의 체제는 한자를 먼저 놓고 한글을 그 아래에 달아놓은 《월인석보》의 <월인천강지곡> 부분과 대조적이어서 한글을 존중한 세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한자음 표기에 있어서도 이 책에서는 음가(音價)없는 종성에 '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징적인데, 《석보상절》 이후의 문헌에서는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 표기의 한 특징으로서 위와 같은 환경의 종성에 'ᇰ'을 사용하였다(예 : 希 ).

이밖에 중성(中聲)의 자형(宇形)에 있어서도 ‘、’, ‘ 、ㅣ’의 경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한글자형의 변천을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편, 활자는 《석보상절》과 똑같이 갑인자(甲寅字)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쓰인 한글 활자를 포함하여 서지학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권상은 진기홍(陳錤洪) 소장으로 온전히 전하고, 상권과 중권의 낙장이 국립중앙도서관소장의 《석보상절》에 끼어 전한다. 1961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실물크기대로 영인, 간행하였으며, 그밖에 1962년 《국어학(國語學)》 1호 등에도 영인, 수록되었다.

내용은 석가의 전생으로부터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왕자로 생장하고, 화려한 결혼생활 가운데에서 인생에 대한 번민으로 출가, 수도하여 불도를 깨치고, 장엄한 권능으로 중생을 교화, 제도하다가 열반하여 그 진신 사리를 신중들이 봉안, 신앙하기까지의 전생애를 소설적인 구조로 서사화하였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석가의 인격과 권능을 신화적으로 미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을 찬탄하는 전형적인 서사시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표현면에서도 완벽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음곡(音曲)에 의하여 가창(歌唱) 됨으로써 거기에 알맞은 운율로 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묘사에서 서경이나 서정이 뛰어나고 수사법이 고루 갖추어짐으로써 수려한 서사시로 완결되었다.
<용비어천가>와 함께 최고의 국문시가로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교성과 문학성을 조화, 통일시킨 장편 서사시로서, 인도문학의 걸작이라는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대비되는 명작으로 평가된다.
별곡계통의 악장체를 집대성한 거작으로 자리를 굳혔고, <용비어천가>와는 달리 일관된 서사성을 지님으로써 시가문학사상 중요한 구실을 하여왔다.
곧 이 작품은 '이야기체 노래'로서 가사(歌辭)의 기본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가사문학의 형성과정에서 한시계통의 가사구조로부터 본격적인 가사에 이르는 중간에 자리하여 그 맥락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월인석보》에 이르러 불교게 강창문학(講唱文學)의 대본이 되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상절부(詳節部)는 강설하는 부분이고 월인부는 가창하는 대목으로 되어 있어서, 이것이 강창문학의 표본이라면 국문학의 소설사 내지 희곡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