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문화유산이 많았던 고찰

 



‘훈민정음 해례본’은 광흥사 나한상(복장·腹藏)에 있었다.
사찰이 있는 공간은 일상적으로 경쟁에 휘둘려 사는 도회인들에게는 분명 자그마한 평화의 공간이다. 여기엔 개인적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간 본연의 정신적 휴식이라 하겠다. 부임 5개월을 맞는 광흥사의 새로운 주지 범종스님은 색다른 공유의 불도 말씀을 전한다.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813번지에 위치한 광흥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 지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 세 번에 걸쳐 도굴된 국보급 이상의 직지심경과 훈민정음 1본(해례본)이 있었던 사찰로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긴 역사를 가진 사찰이다.

뜨락의 500년 된 거대한 은행나무(보호수 지정11-14-4-3)에서 이 사찰의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이유로 빛바랜 위상과 오랜 시간 방치되어져 온 사찰에 생명과 기를 불어 넣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생활 속의 광흥사, 생활 속의 부처님 말씀이 스며드는 곳

범종스님은 “향후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방식에 시민 누구나 수용가능한 문화를 접목 시키고자 하는 비전과,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며 나 자신을 똑 바로 세울 수 있는지에 있다”고 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으로 스스로 정신적 충만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마음의 해방이다.

주지스님에게 5개월이란 기간은 많은 업적을 내기엔 짧지만, 앞으로의 광흥사의 발전을 위한 큰 방향과 계획을 수립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지난 시기가 바로 기회 일 수 있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범종스님은 "부처님말씀을 실생활 속 여러 활동이나 관심사들과 연계하여 문화라는 코드로 접목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특히, 스님은 일회성의 방문과 형식적인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가족단위의 공동체 생활과 광흥사 자체의 영농법인 설립으로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직거래 하는 등 시민들의 체험을 유도함으로써 생활 속의 광흥사, 생활 속의 부처님 말씀이 스며들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만일, 이러한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광흥사는 방문자들의 쉼터, 즉 힐링 캠프가 될 수 있고, 탬플스테이, 수행공동체.village나 콘도 형태의 역할도 수행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도의 특정 사찰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 관광 상품과 결합되어 자신의 고뇌의 근원을 고민하게 하는 프로그램과 오버랩 된다. 우리의 불교사찰에도 이와 유사한 공통점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엔 커피나 사진 강좌 혹은 이를 전시회로 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진전 시켜 나갈 프로그램이 세부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평소 차, 커피와 사진 작업에 관심을 가졌던 주지스님은 전문적인 배움의 경험으로 이제 광흥사를 찾아올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중년층들과 교감하기 위해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린 스마트 폰 활용강좌도 염두에 두고 있다. 소통의 문화가 점차적으로 중요해지는 디지털 시대에 세대별 가로지르기를 위해선 중년층이 꼭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정관념"과 "집착, 고집"을 놓아 버려야 한다.

광흥사 주지스님은 이어 강조했다. “나를 찾는 것이다. 요즘 온앤오프 서점에서 온갖 종류의 신조어와 유행어로 무장한 처세술과 인간관계에 대한 전략을 설파하는 서적들을 누구나 한 두 권쯤 읽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해답을 얻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화를 겪고 일터에서 반목할까? 나의 정체성과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것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범종스님은 “과중한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한국인의 생활, 아버지로써, 어머니로써, 일등 지향 문화와 한 사회 혹은 조직원으로써 기대 받는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스스로의 가치를 놓아 버리게 되는 우를 범한다. 우리 모두 ‘고정관념과 집착, 고집’을 놓아 버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내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있는 그대로 세상만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 해 버리는 것이다. 특히 4050세대는 근본적인 회의에 봉착하게 되는 대표적인 세대이다. 가장 중요한 나라의 경제허리 역할을 하면서 그 동안 앞뒤 가릴 틈 없이 숨 가쁘게 살아온 자신의 위치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세대인 것이다.

스님은 한 예로, 남방에서 원숭이 사냥을 위해 손만 겨우 들어가는 구멍을 우리에 낸 후 바나나나 온갖 과일을 채워 놓으면, 원숭이가 그 구멍으로 손을 넣어 과일을 집어가려고 하면 포획당하는 사냥방식을 이야기 한다. 만일 이 원숭이가 그 손을 그냥 놔 버리면 인간에게 잡히지 않고 자유로워 질 수 있는데 그 과일에 집착하느라 결국은 잡혀버리고 만다는, 이 원숭이의 모습은 우리네 인간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維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범종 스님은 주변의 한 지인이 광흥사에서 백일간의 "단기출가"를 하며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양의 불법을 공부해야 될 것이라는 초기의 막연한 부담감과 선입관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통감했다는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정리하였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維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이라.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니 오로지 간택을 삼가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으면 도는 저절로 명백하다. 내가 있는 그대로 열심히 매진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그 모습을 다 드러내게 된다. 즉, 내가 깨달았을 때 바로 극락이자 천국이며, 단지 불교라는 이름을 통해서 내가 깨달을 뿐이다. 그 종교는 기독교인이건, 또는 이슬람교이건 무관하게 나를 깨닫고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내가 행복해 지는 지름길인 것이다.)

Roger Marine의 "몇 년 간격으로 당신의 것을 태워 버려라-컴퓨터 처럼 format하여 주기적인 지식 체계를 재검토하라" 라는 말이 생각난다. 얼핏 이 말은 속세 세계의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대의 도회인들에게 ‘비움’의 행위는 또 다른 차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동양과 서양에서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사소한 일상 속, 취미삼아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속에서 비움과 동시에 일상과는 다른 ‘시간’ 체계로 들어가는 사찰에서의 나에 대한 재발견으로 스스로 치유해 가는 선택을 때로는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집중된 시간과 포화된 지식에 짓눌려 좌표를 상실한 가난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김동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