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해례본 절도피의자 '무죄'


【대구=뉴시스】최창현 기자 = 원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절도사건의 피의자에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올 2월9일 1심판결에 대해 피고인과 검찰측 모두 항소한 해례본 절도 사건과 관련, 대구고법은 8회에 걸쳐 공판을 열었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 이진만 부장판사는 7일 검찰이 신청한 증거에 대해 추가로 조사와 변론을 했으며, 재판부 직권으로 증인을 채택 조사하고 여러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진술의 신빈성이 떨어져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유죄판단의 근거가 된 해례본 소유자 조모씨 등 5명의 증인들의 증언과 수사기관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례본 출처에 관한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진술 또한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며, 해례본 상태에 관한 진술 역시 신문기사나 방송을 토대로 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 진술은 해례본을 직접 본 또 다른 증인의 증언과 내용이 크게 다르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이 해례본을 훔치기로 하고 미리 해례본의 가치와 문화재 지정절차를 확인했다는 사실도 통상의 관념에 비춰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이 해례본을 훔친 것이라면 소유자인 조모씨에게 발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상단 기간 해례본을 은폐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은 2008년 7월30일 안동의 한 방송국에 공개했으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이 점에서 훔친 사실이 의심이 간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민속당에서 고서를 구입한 날짜에 관한 조씨의 수사기관 초기 진술 및 그 번복 경위 등을 비춰 보면 피고인이 2008년 7월26일 민속당에서 지씨홍사집 등 고서를 구입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문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결국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조씨 등 5명의 진술은 모두 믿을 수 없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리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배씨는 2008년 7월 경북 상주시내 한 골동품 가게에서 두 상자 분량의 고서적을 30만원에 구입했다. 당시 주인 조모(67)씨는 "자신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해례본을 배씨가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이후 논란이 되자 배씨는 당시 집수리 중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며, 그러나 한달 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물품 인도 청구 민사소송을 벌여 3년여 재판 끝에 지난해 6월 "배씨는 조씨에게 해례본을 돌려주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배씨는 조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이런 가운데 배씨가 은닉해 행방을 알 수 없는 해례본의 소유권자가 된 조씨는 올 5월 해례본의 소유권 일체를 국가에 기증하면서 "빨리 찾아내서 훼손을 막고 국민이 함께 향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례본은 1446년 간행됐으며 한글의 창제원리와 의미, 사용법 등을 한자로 기록한 30장 분량의 책이다.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보 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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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9-07 11:37 | 최종수정 2012-09-07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