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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사 소개


안동 광흥사장 금자사경 1첩(安東廣興寺藏金字寫經1帖)

 


* 금자장경(金字藏經 아교풀에 금박을 풀어서 쓴 불교의 경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3호
명 칭 : 안동 광흥사장금자사경 (안동광흥사장금자사경)
분 류 :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사경
수량/면적 : 1점
지정(등록)일 : 1999.12.30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소후면 자품리 813
시 대 : 세종 초기 14세기?
소유자(소유단체) : 광흥사

사경은 공덕 수행을 위한 신앙의 차원에서 정성들여 경문을 쓰고, 불경을 요약한 변상(變相)을 그려 장엄하게 꾸민 것을 총칭한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금자경은 불상의 몸에 넣기 위해 처음에는 전체길이 7m의 종이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가로 7.4㎝, 세로 16.5㎝크기로 병풍처럼 접은 첩모양이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나옹화상의 어록과 발원문(發願文:책을 만드는 이유와 만든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옹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나옹화상(1320∼1376)은 고려 공민왕의 스승이 되어 다시 보제존자의 호를 받은 스님이다.

이 금자경은 나옹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아 늦어도 세종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불경연구나 서지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구마라습 : 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 ·구마라기바(拘摩羅耆婆), 줄여서 나습(羅什) ·습(什), 의역하여 동수(童壽:중국명)라고도 한다. 인도의 귀족 구마라염(鳩摩羅炎:Kumārāyana)을 아버지로, 구자국(龜玆國)왕의 누이동생인 기바(耆婆:Jivā)를 어머니로 하여 구자국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이름은 부모의 이름을 합한 것이라고 한다.

7세 때 출가하여 여러 곳을 편력하다가 인도 북쪽 계빈(罽賓)에서 반두달다(槃頭達多)에게서 소승교(小乘敎)를 배우고, 소륵국(疏勒國)에서는 수리야소마(須梨耶蘇摩)로부터 용수(龍樹)의 대승교(大乘敎)를 배운 다음 구자국으로 돌아와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서 율(律)을 배웠다. 그 후 구자국에서 주로 대승교를 포교하였다. 383년 진왕(秦王)이 여광(呂光)을 시켜 구자국을 공략하였을 때 여광은 구마라습을 데리고 양주(凉州)로 갔으나, 그 뒤 후진(後秦)이 양주를 쳐서 후진왕 요흥(姚興)이 401년 구마라습을 장안(長安)으로 데리고 가 국빈으로 대우하였다.

그는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 등에 있으면서 많은 경전을 번역하여, 《성실론(成實論)》 《십송률(十誦律)》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중론(中論)》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등 경률 74부 380여 권을 펴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론(三論) 중관(中觀)의 불교를 위하여 많은 힘을 기울여 이를 확립하였으므로 오늘날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그를 삼론종(三論宗)의 조사(祖師)로 부르고 있다. 그의 제자 3,000명 가운데 도생(道生) ·승조(僧肇) ·도융(道融) ·승예(僧叡)를 가리켜 습문(什門)의 4철(四哲)이라 한다. 413년 장안의 대사(大寺)에서 69세로 죽었다.